2013년 6월 12일 수요일

신앙생활은 세미한 음성을 듣는것이다. (26/3/13)

신앙생활은 세미한 음성을 듣는것이다.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에서 하나님께 죽음을 구합니다. 살기위해 도망치는 자신이 한심해서 일까요? 아님 하나님을 믿는 선지자가 한명도 없어서 외롭기 때문일까요? 하여간 엘리야는 하나님께 죽음을 청합니다. 인생의 목적을 잃어버렸을까요? 엘리야는 아마도 갈멜산에서 승리로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길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실수를 종종 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내가원하는 일들이 생길거라고... 하지만 결과는 달랐고 엘리야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원치 아니한 결과임에 분명합니다. 스스로 말하시를 자기는 앞에 있건 선지자보다 못한자라고 고백합니다. 이말은 비꼬아서 하나님께 이야기하는것 같습니다. 엘리야는 화가 많이 났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신세한탄에 하나님이 얇밉게 보였을수도 있습니다. 사실 엘리야만큼 기적을 많이 행한 선지자도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잘알던 선지자였습니다. 스스로 말하길 나는 하나님께 열심이 특심이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하나님을 잘 아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리나 오늘 하나님께선 그에게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앞에 서 있으라... 그리고 하나님은 한가지 교훈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보여지는 것들에 있지않고 잔잔한 음성가운데 있다는것을... 엘리야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합니다 "네가 어찌 여기있느냐?"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잠시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알기에 열심이였고 이적을 많이 행한 사람도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곳에 머물머 실족할수있다는 것을... 엘리야는 이때 자신의 신앙관을 다시 점검했을것같습니다. 내가 원하고 바라는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하나님이 원하시는 역사)을 듣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을것같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 소망(엘리사)을 주십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신앙생활은 이벤트나 행사중심의 신앙생활이 아니라 조용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기도) 중심의 신앙생활이 중요함을 알려주는 것같습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봅니다. "네가 어찌 여기있느냐?" 아마도 많은 선교사님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하나님의 말씀이였을 겁니다. 우리는 뭐라고 대답해야할까요?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 6:8 KRV)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열왕기상 19:11-13 KR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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