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3일 목요일

교회 공동체의 시작(12/3/13)

교회 공동체의 시작

신약성경에 나오는 교회 공동체중 아마도 안디옥교회가 가장 모범적인 교회일것같기도하다. 그 안디옥교회의 시작은 "몇 사람" 평신도였습니다. 그리고 바나바와 바울의 만남 이것이 역사적 만남입니다. 바울은 왜? 다소에 있었을까? 예루살렘교회로 가지 못하였을까? 다소는 바울의 고향이다. 바울을 품지 못했을까? 상처... 바나바가 안디옥으로 사역지를 정하고 바울을 만나서 같이 안디옥에서 사역을 하였다. 바나바가 없었다면 바울 또한 없었을수도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위대한공동체의 탄생은 결코 위대한 사람들이 시작이 아니라 이방인을 전도한 평신도 "몇사람"과 바울을 품었던 바나바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교회를 핍박한 바울... 그는 초대교회의 가장 성경적 공동체를 이루는 주역이되었다. 나는 주역인가? 주적인가? ㅋㅋ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사도행전 11:19, 20, 25, 26 KRV)

잠잠하지 않을 이유(12/3/13)

잠잠하지 않을 이유

우리는 사명을 다한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대적이 우리를 두렵게 한다하여도 담대히 사명을 다한다. 우리가 묵묵히 사명을 감당할 이유가 어디있을까? 간혹 우리는 본질을 놓칠수도있다. 교회에는 이벤트가 많다. 근데 왜 해야할까? 하나님의 관심사는 어디에? "이 성중에 내 백성이"... 여기에 진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사도행전 18:9, 10 KRV)

폐하여지는 것 (13/3/13)

폐하여지는 것

없어지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유욘했지만 더 이상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예로 하늘에는 해가 필요없다. 하나님이 빛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은사중에 하늘나라에서 필요없는 것들도 있다. 이런것을 바울은 부분적인것들 어린아이의 일이라고 했다. 이젠 조금더 오래 유용한 것에 집중하는 현명함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말씀? 사랑? 믿음? 제자?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린도전서 13:8, 10, 11 KRV)

믿음(바울) vs 믿음(야고보)(15/3/13)

믿음(바울) vs 믿음(야고보)

재미있는 주제이지만 교회를 다니다보면 꼭 언젠가? 이 질문이 부딛힌다.
스스로 답을 찾아봐야할 문제이다. 개인적으론 바울은 창세기 15장을 가져왔고 그곳에 분명 "의"가 나온다. 야고보는 창세기 22장에서 순종이후의 축복을 말하는것같다. "의로움" 만 본다면 바울의 말이 조금더 나에게 설득력이 있어보인다 ㅋㅋ 성경은 믿는것이디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ㅋㅋ

바울왈: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로마서 4:2, 3 KRV)

이본문은 구약 창세기 15장을 가져온것이다.
...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세기 15:4-6 KRV)

야고보왈: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야고보서 2:21, 22 KRV)

야고보는 창세기 22장을 인용하였다.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창세기 22:16-18 KRV)

그날 (16/3/13)

그날...

그날에 정확히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로마서에서는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날에는 우리를 밤낮 참소하던자가 더 이상 우리를 정죄할수 없습니다. 그날엔 그리스도의 권세아래 모든 권세가 무릎꿇는 날일것입니다. 그날을 나는 기대하고 있나요?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 났고 (요한계시록 12:10 KRV)

위로(16/3/13)

위로.

바울은 하나님께 은혜를 간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바울에게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말하십니다. 바울은 나의 연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남을 깨닫게됩니다. 하나님이은우리가 약하고 상처받기 쉬운자들인것을 아쉽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기 위해서 일까요? 아마도 위로라는 선물을 주시기위함이 아닐까요? 위로의 선물은 고난받는 자들만 누리는 특권이 아닐까요?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 21:4 KRV)

열려있는 하늘나라(16/3/13)

열려있는 하늘나라

Paul Washer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전하신적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완전한 인간이 하늘나라 문앞에섰다. 그리고 명하기를 "문들아 머리들어라" 천국의 문이 열리고 완전한 한 사람이 그 문으로 들어가셨다. 그 한 사람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분의 설교가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 천국의 성문은 닫히지 않습니다. 그 천국문을 열으신 예수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요한계시록 21:25 KR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