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3일 화요일

말씀에 붙잡혀

말씀에 붙잡혀...

우리는 말씀을 붙잡고 삽니다. 분명 중요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말씀을 붙잡을때 이게 좋은것인데 이상하게 우리가 좋아하는 말씀만 선택적으로 붙잡을수도 있는것 같아요. 물론 없는것 보다는 훨씬 좋은 것같아요. 하지만 조금더 생각해보면 어쩌면 말씀이 우리를 붙잡고 가는것 같아요. 사도행전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예수를 그리스도를 증거한다고 나옵니다. 저의 생각엔 내가 말씀을 붙잡아서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거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 한가지 문제에 부딛칩니다. 바로 사역이 "일"이 된다는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끌어가는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가 이끌어가는듯한 느낌을 받을수 있고 얼마가지 못하여서 힘이 빠집니다.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내가 말씀을 붙잡아 가는지"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붙잡아 가는지"가 바로 한가지 이유일수도 있을것같습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행18:5)

사도행전에서 나타난 바울의 전도는 늘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침묵하지 말라" 그리고 구원받을자가 많다고 말합니다. 근데 재미있는 부분은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자가 없다?" 이부분이 궁금합니다. 과연 우리가 전도를 할때 우리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자가 없을까요?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했는지.. 그럼 이 말씀이 이상하지 않나요? 그런데 저는 이것을 이렇게 이해를 했어요. 우리가 전도를 할때 그 어떤것도 "주님을 향한 열정" "영혼에 대한 마음"을 막을 그 어떤것도 없다라구요. 물론 주님께서 도와주실것입니다. 그럼 그 고난은 무엇인가요?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이 선물이라고... "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후1:5)"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신 이유가 우리를 위로하기 위하여라고 바울은 결론을 내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지 아니할찌라도 우리는 전도를 멈추면 안되는것 같아요.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행18:9-10)

특별히 고3때 많이 외우는 말씀이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것을 할수 있느니라" 이 말씀의 앞부분이 궁금하지 않나요? 사도행전 위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그런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앞부분을 읽어보면 우리의 생각하고는 조금 다름을 알수가 있습니다. 바울이 내가 모든것을 할수 있다는 말을 쓸수 있는 이유는 바로 어떤형편을 내가 만나도 상관없다. 좋은환경을 만나도 어려운 형편을 만나도 배고프고 가난해져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말씀에 붙잡혀"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바울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라고 표현한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말씀에 붙잡힌 바울은 "주님을 향한 열정" "복음에 대한 열정" "영혼에 향한 마음"을 멈출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라고 고백을 하면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것을 할수 있다"라고 고백하는것 같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1-13)

주님의 말씀에 붙잡힌 사람의 삶은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영광된 삶일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을수도 있는것 같습니다. 그 영광된 삶을 살았던 바울의 삶... "모든것을 할수 있다"는 바울의 고백은 쉽게 나온 고백이 아닙니다. 바울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이 삶이 영광스런 삶으로 언젠가 저에게도 다가오는 날이 있겠죠? 아래의 글에서 바울은 자신의 고난보다 더 고민하는것 한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였습니다. 바로 그것이 말씀에 붙잡혀 사는 삶이 아닐까요?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후11:23-28)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