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사마리아인 과 네마리 비둘기...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눅10:35)
선한 사마리아인은 두개 "데나리온"을 주면서 죽어가던 사람을 주막에 맡깁니다. 데나리온은 성경에 나오는 화폐의 단위인데
하루일당이 한개 데나리온 이라고 합니다. 그럼 이틀치의 자신의 일당을 생명부지의 사람을 위해서 주고 그리고 나머지 더 필요한것을
돌아올때 주막주인에게 갚아주겠다고 합니다.
1 드라크마 = 1 데나리온 입니다. 성경에서는 이 화폐단위가 많이 나옵니다. 그 당시에 이 화폐로 할수 있었던것이 1개의 데나리온으로 비둘기 두마리를 구입할수가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2개의 데나리온을 주었으니 비둘기 네마리값을 지불한것입니다. 이게 참 중요합니다. 이제 예수님이 선한 사마리아인과 비교한 제사장과 레위사람을 보겠습니다.
저는 선한 사마리아인과 비교대상이 있습니다. 이들은 제사장과 레위사람입니다. 이들은 율법을 잘알았던 사람이지요... 유대
율법에는 시체를 가까이 하면 부정합니다. 따라서 그들이 시체를 가까이 하지 아니함으로 자신을 부정하는것에서 벗어날수 있으니 이것을
가지고 우리는 따질수 없을것도 같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율법을 너무 잘 알았다는 예로 예수님을 비교를 할때 제사장과 레위사람을
등장시킵니다. 이들이 어떻게 부정하게 되는지도 알지만 또한 어떻게 정하게 되는지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게 무슨말이냐면요. 그들이
부정해져도 다시 정해지는 절차를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과연 그러면 어떻게 깨끗하게 될까요?
만일 누구든지 부정한 것들 곧 부정한 들짐승의 사체나 부정한 가축의 사체나 부정한 곤충의 사체를 만졌으면 부지중이라고 할지라도 그 몸이 더러워져서 허물이 있을 것이요 (레5:2)
그 깨끗하게 하는 절차가 바로 "속죄제"입니다. 희생의 제물이 필요합니다. 이번의 사체를 인하여 부정하게 되었을때 그들이
지불해야할 가장 작은단위의 희생제물이 뭘까요? 바로 "산비둘기 두마리"입니다. 이것을 돈으로 따지면 바로 1 데나리온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첫번째 이것을 말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레위 사람과 제사장은 바로 1 데나리온을 아끼기 위해서 그
죽어가던 사람을 피했습니다. 하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은 2데나리온을 지불하고 돌아와서는 그 나머지도 지불할려고 했습니다. 유대의
율법을 아는 사람(제사장,레위인)은 산비둘기 두마리를 한명의 죽어가는 사람의 목숨보다 가치 없게 여겼을까요? 우리는 알수
없습니다. 저는 근본적인 문제가 바로 유대인들의 율법을 지키는 이유가 자신의 의로움이 기준이였다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의로움의
기준을 이웃사랑으로 전환하라고 가르치고 있는것 같습니다. 만약에 제자이 자신의 부정케 되는것이 문제였다면 예수님의 예화에 답하기
곤란했을수도 있었겠지만 예수님은 질문의 기준을 "자신"에서 "이웃"으로 기준을 변화 시킵니다. 누가 "이 사람의 이웃"이냐? 이게
참으로 중요한것같습니다. 우리의 선의 행함의 기준은 "내가" 되면 안되고 바로 "이웃"이 기준이되어야합니다.
그
잘못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속죄제를 드리되 양 떼의 암컷 어린 양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하여 속죄할지니라 만일 그의 힘이 어린 양을 바치는 데에 미치지 못하면 그가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여호와께로 가져가되 하나는 속죄제물을 삼고 하나는 번제물을 삼아
(레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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