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돌아봄
1.나아만장군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이 사람은 아람의군대장이지만 나병에 걸렸고 아람왕이 직접편지를 써서 이스라엘왕에게 나아만장군의 나병을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왕은 근심걱정에 사로잡히지만 엘리사는 이스라엘왕에게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다는것을 알게될것이라고 말하며 안심시킵니다. 그리고 나아만에게 7번 요단강에 몸을 씻고 깨끗함을 얻게됩니다. 이 나아만을 자세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반응이 있습니다. 먼저 엘리사가 아무것도 물어보지 아니하였는데 그가 고백하는것이 2가지가 있습니다.
1)"...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왕상5:17)"
2)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왕상5:18)"
왜 스스로 이렇게 말했을까요?
2. 저는 학교에서 전도를 하다보면 나아만 같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들입니다. 외국인친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첫번째 저에게 물어본것이 자신의 목걸이와 팔찌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부모님께서 부적으로 준것입니다. 저에게 이것을 어떻게 하냐?고 물어봐서 저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밤에 이 친구는 스스로 그것을 벗었습니다. 두번째는 전도하라고 말도 안했는데 여자친구가 불교신자라서 어떻게 전도할지를 걱정하는것입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전도할려고 너무 노력하지 말고 그냥 놓아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3.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영접한것 뿐인데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는점이 재미있는것같습니다. 저는 여기서 하나의 신앙생활 방법을 발견할수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은혜의 자리로 나아가다보면 스스로 우리 자신을 돌아본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나를 돌아보게 합니다. 따라서 이 십자가를 체험한 사람들이 많은 공동체는 겸손한 공동체 같습니다. 그래서 "이웃의 잘못이 보이기는 커녕 나의 잘못이 더 크게 보이고 나의 악한 모습이 너무나 잘보인다는것입니다". 혹시 우리에게 이웃의 잘못이 너무 크게 보이고 그것을 용납할수 없다고 말하고있다면 아마도 우리는 은혜와 거리가 먼 곳에 있을수도 있습니다. 나에게 무엇이 잘보이는가요? 십자가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고 있나요?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고전15:8)"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고전15:9)"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롬7:1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엡3:8)"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
*생각해볼점:
1. 혹시 내가 잘못을 했을때 하나님의 사랑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해본적있나요?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동일할까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8:38-39)"
2013년 5월 12일 일요일
한병 기름외에는
한 병 기름 외에는
“Nothing at all, except a small jar of olive oil"
"...집에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나이다 (열왕기하 4:2 KRV)"
1.엘리사의 생도중 한명이 죽었습니다. 문제는 그집이 빚이 있는데 조금후면 채권자들이 와서 집에있는 아이들을 잡아갈려고 합니다. 이 때 죽은 생도의 아내가 엘리사에게 상황을 말합니다. 엘리사가 물어봅니다. 집에 무엇이 있는지... 그 여자는 대답합니다 "기름 한병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엘리사가 저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 저가 가로되 계집종의 집에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나이다 (열왕기하 4:2 KRV)"
2.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그릇을 최대한 빌려서 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기름을 그릇에 채웁니다. 더 이상 채울 그릇이 없을때 병에 기름이 없어졌습니다.
"가로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 (열왕기하 4:3 KRV)"
3.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방법을 이야기 합니다. 그릇을 최대한 많이 빌려오면 된다고합니다. 은혜도 병안에 있는 기름과 같은것같습니다. 은혜가 끊어지지 아니하는 방법은 바로 그릇을 넓히는것같습니다. 이 그릇이 무얼까요?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자하는 갈망"일수도 있고 은혜를 나눌 "이웃"일수도 있습니다. 혹시 내 삶에 은혜가 정체되거나 고갈되었다고 생각될때... 무엇을 해야할까요? 아마도 십자가은혜를 향한 열정을 회복시켜달라고 하거나 아니면 은혜를 나눌 이웃을 달라고 기도해야할것같습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편 51:12 KRV)"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편 23:5 KRV)"
*생각해볼점:
1.하나님의 은혜가 내 안에 넘치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 은혜를 누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15:16 KRV)"
“Nothing at all, except a small jar of olive oil"
"...집에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나이다 (열왕기하 4:2 KRV)"
1.엘리사의 생도중 한명이 죽었습니다. 문제는 그집이 빚이 있는데 조금후면 채권자들이 와서 집에있는 아이들을 잡아갈려고 합니다. 이 때 죽은 생도의 아내가 엘리사에게 상황을 말합니다. 엘리사가 물어봅니다. 집에 무엇이 있는지... 그 여자는 대답합니다 "기름 한병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엘리사가 저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 저가 가로되 계집종의 집에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나이다 (열왕기하 4:2 KRV)"
2.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그릇을 최대한 빌려서 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기름을 그릇에 채웁니다. 더 이상 채울 그릇이 없을때 병에 기름이 없어졌습니다.
"가로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 (열왕기하 4:3 KRV)"
3.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방법을 이야기 합니다. 그릇을 최대한 많이 빌려오면 된다고합니다. 은혜도 병안에 있는 기름과 같은것같습니다. 은혜가 끊어지지 아니하는 방법은 바로 그릇을 넓히는것같습니다. 이 그릇이 무얼까요?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자하는 갈망"일수도 있고 은혜를 나눌 "이웃"일수도 있습니다. 혹시 내 삶에 은혜가 정체되거나 고갈되었다고 생각될때... 무엇을 해야할까요? 아마도 십자가은혜를 향한 열정을 회복시켜달라고 하거나 아니면 은혜를 나눌 이웃을 달라고 기도해야할것같습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편 51:12 KRV)"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편 23:5 KRV)"
*생각해볼점:
1.하나님의 은혜가 내 안에 넘치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 은혜를 누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15:16 KRV)"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What are you doing here, Elijah?"
"..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19:9)"
1.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고 물어봅니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요?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고 그는 바알 선지자 450명을 죽입니다. 그리고 아합왕에게 말합니다. 가뭄이 그치고 비가 올것이라고 예언하고 비가 옵니다. 엘리야가 기다린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아합이 마음을 돌이키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것일거라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엘리야는 아합을 앞서서 달려가서 기다립니다. 하지만 아합은 이 사건들을 이세벨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이세벨은 엘리야를 죽이라 명합니다. 그리고 이 상황을 파악하고 엘리야는 도망을 가는중에 죽기를 원합니다.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왕상19:3-4)"
2.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물어봅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있느냐?" 이 질문을 두번 똑같이 물어봅니다. 이 질문에 똑같이 엘리야는 두번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이 엘리야가 왜 여기 있는지 몰라서 물어보는것은 아닐것입니다. 그러나 두번 물어봅니다. 엘리야의 대답은 "내가 하나님께 열심이 특심이였으나 지금은 혼자만 남았습니다."였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하는 대답을 스스로 생각해 보길 원하셨던것 같습니다. 엘리야가 슬퍼서 울고 죽고 싶어하는 이유가 자신이 정말 열심히 일하였는데 원한것처럼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그리고 혼자있는 것같은 외로움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할때 이런 상황을 많이 마주칩니다. 그리고 우리는 외롭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하였다"라고 말하는것 같습니다.
"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43:2)"
3.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말씀하시며 새소망을 주십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남겨둔자들입니다. 저는 이 사람들을 "제자"로 생각을 합니다. 엘리야는 "큰 이벤트"로 한번에 바꿀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남겨둔자"를 통해서 바꿀려고 하시는것같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열심으로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길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결과가 아닐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열심으로 우리의 방법으로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이루는것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이 원하는 결과를 이루는것에 집중하면... 아마도 우리는 길을 잃고 방황하지 않고 살아갈 분명한 이유를 발견할수 있는것 같습니다. 그 살아가야할 소망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같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원하시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왕상19:18)"
*생각해볼점:
1. 하나님을 일을 한다고 하지만 그 결과가 내가 원하는 형태로 나타나지 아니하였때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요?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사55:8)"
2. 우리는 무엇에 소망을 두어야 할까요?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딤후2:2)"
"What are you doing here, Elijah?"
"..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19:9)"
1.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고 물어봅니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요?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고 그는 바알 선지자 450명을 죽입니다. 그리고 아합왕에게 말합니다. 가뭄이 그치고 비가 올것이라고 예언하고 비가 옵니다. 엘리야가 기다린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아합이 마음을 돌이키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것일거라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엘리야는 아합을 앞서서 달려가서 기다립니다. 하지만 아합은 이 사건들을 이세벨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이세벨은 엘리야를 죽이라 명합니다. 그리고 이 상황을 파악하고 엘리야는 도망을 가는중에 죽기를 원합니다.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왕상19:3-4)"
2.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물어봅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있느냐?" 이 질문을 두번 똑같이 물어봅니다. 이 질문에 똑같이 엘리야는 두번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이 엘리야가 왜 여기 있는지 몰라서 물어보는것은 아닐것입니다. 그러나 두번 물어봅니다. 엘리야의 대답은 "내가 하나님께 열심이 특심이였으나 지금은 혼자만 남았습니다."였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하는 대답을 스스로 생각해 보길 원하셨던것 같습니다. 엘리야가 슬퍼서 울고 죽고 싶어하는 이유가 자신이 정말 열심히 일하였는데 원한것처럼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그리고 혼자있는 것같은 외로움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할때 이런 상황을 많이 마주칩니다. 그리고 우리는 외롭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하였다"라고 말하는것 같습니다.
"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43:2)"
3.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말씀하시며 새소망을 주십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남겨둔자들입니다. 저는 이 사람들을 "제자"로 생각을 합니다. 엘리야는 "큰 이벤트"로 한번에 바꿀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남겨둔자"를 통해서 바꿀려고 하시는것같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열심으로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길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결과가 아닐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열심으로 우리의 방법으로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이루는것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이 원하는 결과를 이루는것에 집중하면... 아마도 우리는 길을 잃고 방황하지 않고 살아갈 분명한 이유를 발견할수 있는것 같습니다. 그 살아가야할 소망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같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원하시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왕상19:18)"
*생각해볼점:
1. 하나님을 일을 한다고 하지만 그 결과가 내가 원하는 형태로 나타나지 아니하였때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요?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사55:8)"
2. 우리는 무엇에 소망을 두어야 할까요?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딤후2:2)"
솔로몬의 기도
솔로몬의 기도
왕상8:23-53
"범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왕상 8:46)"
1. 솔로몬이 성전건축을 마치고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기도의 내용이 무엇이 있을까요? 총 16개의 문장입니다. 기도의 내용을 의역해서 간단하게 적어보았습니다.
1)언약을 지키시고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
2)말씀을 지키시고 이루시는 하나님
3)다윗에게 약속 하셨던 축복을 지키소서
4)다윗에게 하셨던 약속을 확실하게 하소서
5)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십니다
6)기도를 들으소서
7)기도를 들으소서
8)기도에 응답하시고 용서하여주소서
9)주께 맹세를 하면 행한대로 갚으소서
10)주의 백성이 패하여 하나님께 돌아오거든 죄를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소서
11)주께 범죄하여 벌을받아 주께 기도하거든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소서
12)재앙이 닥쳤을때 한사람이라도 주께 회개 기도를 하거든 용서하시지만 징계로서 주께로 돌아오게 하소서
13) 이방인이라도 주께로 돌아와서 간구하거든 그들의 기도를 들으소서
14)어려운일을 당해서 주께 기도하거든 그들을 돌아보소서
15)늘 범죄하는 인생이오니 재앙을 깨닫고 기도하거든 우리의 기도를 들으소서 우리는 주의 백성입니다.
16)하나님 나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2. 솔로문의 기도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약속을 지키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만약 주께돌아와서 기도하면 들으시고 회복시켜주소서라는 기도입니다. 여기에 있는 기도는 사실 모세가 했던 말씀하고 너무 흡사합니다. 다른점은 솔로몬의 기도에 이방인의 기도까지 포함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도 그들에게 대항하여 내가 그들을 그들의 원수들의 땅으로 끌어 갔음을 깨닫고 그 할례 받지 아니한 그들의 마음이 낮아져서 그들의 죄악의 형벌을 기쁘게 받으면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고 그 땅을 기억하리라 (레26:41,42)"
3. 저는 왕상8장 46절에 나온 말씀처럼 "하나님께 범죄하지 아니한 사람이 없다"라는 말씀을 봤을때 우리가 해야할기도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회개"의 기도밖에 없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마음을 돌이켜 우리를 죄에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찾고 또 찾는 기도를 하나님은 기뻐하실것 같습니다. 십자가의 그 사랑이 나를 회복시킬것을 믿습니다.
*생각해볼점:
1. 나는 어떤 기도를 해야할까요?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롬7:18)"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왕상8:23-53
"범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왕상 8:46)"
1. 솔로몬이 성전건축을 마치고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기도의 내용이 무엇이 있을까요? 총 16개의 문장입니다. 기도의 내용을 의역해서 간단하게 적어보았습니다.
1)언약을 지키시고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
2)말씀을 지키시고 이루시는 하나님
3)다윗에게 약속 하셨던 축복을 지키소서
4)다윗에게 하셨던 약속을 확실하게 하소서
5)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십니다
6)기도를 들으소서
7)기도를 들으소서
8)기도에 응답하시고 용서하여주소서
9)주께 맹세를 하면 행한대로 갚으소서
10)주의 백성이 패하여 하나님께 돌아오거든 죄를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소서
11)주께 범죄하여 벌을받아 주께 기도하거든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소서
12)재앙이 닥쳤을때 한사람이라도 주께 회개 기도를 하거든 용서하시지만 징계로서 주께로 돌아오게 하소서
13) 이방인이라도 주께로 돌아와서 간구하거든 그들의 기도를 들으소서
14)어려운일을 당해서 주께 기도하거든 그들을 돌아보소서
15)늘 범죄하는 인생이오니 재앙을 깨닫고 기도하거든 우리의 기도를 들으소서 우리는 주의 백성입니다.
16)하나님 나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2. 솔로문의 기도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약속을 지키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만약 주께돌아와서 기도하면 들으시고 회복시켜주소서라는 기도입니다. 여기에 있는 기도는 사실 모세가 했던 말씀하고 너무 흡사합니다. 다른점은 솔로몬의 기도에 이방인의 기도까지 포함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도 그들에게 대항하여 내가 그들을 그들의 원수들의 땅으로 끌어 갔음을 깨닫고 그 할례 받지 아니한 그들의 마음이 낮아져서 그들의 죄악의 형벌을 기쁘게 받으면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고 그 땅을 기억하리라 (레26:41,42)"
3. 저는 왕상8장 46절에 나온 말씀처럼 "하나님께 범죄하지 아니한 사람이 없다"라는 말씀을 봤을때 우리가 해야할기도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회개"의 기도밖에 없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마음을 돌이켜 우리를 죄에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찾고 또 찾는 기도를 하나님은 기뻐하실것 같습니다. 십자가의 그 사랑이 나를 회복시킬것을 믿습니다.
*생각해볼점:
1. 나는 어떤 기도를 해야할까요?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롬7:18)"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겸손에 대한 생각
겸손에 대한 생각
사전적의미:
남을 높이고 자기를 낮추는 태도가 있음.:
"겸손한 몸가짐.겸공(謙恭). ↔거만(倨慢)·교만.".
겸손에도 두 종류가 있는것같다.
1.보여지는 겸손.
사실 이것은 겸손한척하는 겸손이다.
이 겸손은 대중화되어있다.
그래서 그 자리를 탐내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볼수 있고 칭찬을 받는자리이다.
이곳은 정말 매력적인 자리이다.
2. 보이지않는 겸손.
이것은 진짜 겸손이다.
그래서 대중화되어있지않다.
백날 천날해봐도 아무도 그 겸손을 행하는 사람에게
칭찬하거나 겸손하다고 말해주지 않는다.
우리는 이 자리를 탐내지 아니한다.
이곳은 정말 매력이 없는 자리이다.
3.재미있는 사실은 보이지 않는 겸손이 가진 놀라운 능력이다.
그속에는 생명이 있다. 사람들이 살아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그 이유를 평생 모른다.
왜냐하면 보여지는 것에서 이유를 찾기 때문이다.
간혹 아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 또한 보이지 아니하는 겸손을 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들만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들은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이다.
사전적의미:
남을 높이고 자기를 낮추는 태도가 있음.:
"겸손한 몸가짐.겸공(謙恭). ↔거만(倨慢)·교만.".
겸손에도 두 종류가 있는것같다.
1.보여지는 겸손.
사실 이것은 겸손한척하는 겸손이다.
이 겸손은 대중화되어있다.
그래서 그 자리를 탐내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볼수 있고 칭찬을 받는자리이다.
이곳은 정말 매력적인 자리이다.
2. 보이지않는 겸손.
이것은 진짜 겸손이다.
그래서 대중화되어있지않다.
백날 천날해봐도 아무도 그 겸손을 행하는 사람에게
칭찬하거나 겸손하다고 말해주지 않는다.
우리는 이 자리를 탐내지 아니한다.
이곳은 정말 매력이 없는 자리이다.
3.재미있는 사실은 보이지 않는 겸손이 가진 놀라운 능력이다.
그속에는 생명이 있다. 사람들이 살아난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그 이유를 평생 모른다.
왜냐하면 보여지는 것에서 이유를 찾기 때문이다.
간혹 아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 또한 보이지 아니하는 겸손을 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들만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들은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이다.
제사장의 나라 VS 거룩한 제사장
제사장의 나라 vs 거룩한 제사장
1.문제제기: 최정인 목사님께서 고민하고 계신것을 저도 한번 묵상을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19:6절에 나오는 제사장의 나라가 왜? 베드로전서에서는 거룩한 제사장으로 바뀐것일까?라는 고민이였습니다. 원문해석은 안했습니다. 다른영어번역버전과 저의 상식적인 생각으로 깊지않게 추리해보았습니다.
1). 제사장의 나라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출애굽기19:6)
2). 거룩한 제사장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베드로전서2:6)
2. 한글과 영어의 번역이 조금씩 다를수도 있지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영어버전을 몇가지 비교를 해보았습니다. 재미있는점은 영어번역은 상당히 비슷하다는것입니다. 전체 문장은 KJV만 적어보았습니다.
1)제사장의 나라 (a kingdom of priest)
"And ye shall be unto me a kingdom of priests(제사장의 나라), and an holy nation. These are the words which thou shalt speak unto the children of Israel. (출애굽기19:6KJV)"
다른 번역에서는 a kingdom of priests (KJV, NIV, NASB) priests (GNB)
비슷하게 제사장의 나라 또는 거룩한 제사장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2) 거룩한 제사장 (a holy priesthood)
"Ye also, as lively stones, are built up a spiritual house, an holy priesthood(거룩한 제사장), to offer up spiritual sacrifices, acceptable to God by Jesus Christ. (벧전2:6KJV)"
다른번역에서는 a holy priesthood (KJV, NIV, NASB, GNB) holy priests (GNB)
이렇게 나오네요. priesthood를 제사장직으로 볼수도 있고 제사장들로 볼수도 있는 부분이 있네요. 영어의 문맥상으로보면 spiritual house 거룩한 집이 바로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동격으로 두었기에 이부분을 제사장의 나라로 번역하면 이상해지는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교회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 거룩한 제사장(교회/개인)이라고 한국어로 번역한것같습니다.
3.출애굽 시대: 이때 당시에는 이스라엘 공동체 단위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유는 온 열방(나라)이 하나님을 인정하게 하는것에 두엇기에 그런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제사장이란 뜻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직접만나는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사이의 다리역할을 하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 온 열방나라의 제사장역할로 <열방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역할을 강조한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축복과 저주도 함께 받았던것 같습니다.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사 이 땅을 다 당신들에게 주고 이 땅의 모든 주민을 당신들 앞에서 멸하라 하신 것이 당신의 종들에게 분명히 들리므로 당신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목숨을 잃을까 심히 두려워하여 이같이 하였나이다 (여호수아9:24)"
4. 신약시대: 신약시대에는 공동체도 중요하지만 개인이 교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이기에 개인에 중점을 두고 번역하지 아니하였을까 그리고 구원이 공동체에게 역사하는것이 아니라 개인의 믿음으로 고백하는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한국 개신교에서는 <개인의 구원을 더 중요하게 강조할 필요가 있기 때문>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3:16)"
1.문제제기: 최정인 목사님께서 고민하고 계신것을 저도 한번 묵상을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19:6절에 나오는 제사장의 나라가 왜? 베드로전서에서는 거룩한 제사장으로 바뀐것일까?라는 고민이였습니다. 원문해석은 안했습니다. 다른영어번역버전과 저의 상식적인 생각으로 깊지않게 추리해보았습니다.
1). 제사장의 나라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출애굽기19:6)
2). 거룩한 제사장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베드로전서2:6)
2. 한글과 영어의 번역이 조금씩 다를수도 있지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영어버전을 몇가지 비교를 해보았습니다. 재미있는점은 영어번역은 상당히 비슷하다는것입니다. 전체 문장은 KJV만 적어보았습니다.
1)제사장의 나라 (a kingdom of priest)
"And ye shall be unto me a kingdom of priests(제사장의 나라), and an holy nation. These are the words which thou shalt speak unto the children of Israel. (출애굽기19:6KJV)"
다른 번역에서는 a kingdom of priests (KJV, NIV, NASB) priests (GNB)
비슷하게 제사장의 나라 또는 거룩한 제사장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2) 거룩한 제사장 (a holy priesthood)
"Ye also, as lively stones, are built up a spiritual house, an holy priesthood(거룩한 제사장), to offer up spiritual sacrifices, acceptable to God by Jesus Christ. (벧전2:6KJV)"
다른번역에서는 a holy priesthood (KJV, NIV, NASB, GNB) holy priests (GNB)
이렇게 나오네요. priesthood를 제사장직으로 볼수도 있고 제사장들로 볼수도 있는 부분이 있네요. 영어의 문맥상으로보면 spiritual house 거룩한 집이 바로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동격으로 두었기에 이부분을 제사장의 나라로 번역하면 이상해지는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교회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 거룩한 제사장(교회/개인)이라고 한국어로 번역한것같습니다.
3.출애굽 시대: 이때 당시에는 이스라엘 공동체 단위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유는 온 열방(나라)이 하나님을 인정하게 하는것에 두엇기에 그런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제사장이란 뜻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직접만나는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사이의 다리역할을 하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 온 열방나라의 제사장역할로 <열방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역할을 강조한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축복과 저주도 함께 받았던것 같습니다.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사 이 땅을 다 당신들에게 주고 이 땅의 모든 주민을 당신들 앞에서 멸하라 하신 것이 당신의 종들에게 분명히 들리므로 당신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목숨을 잃을까 심히 두려워하여 이같이 하였나이다 (여호수아9:24)"
4. 신약시대: 신약시대에는 공동체도 중요하지만 개인이 교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이기에 개인에 중점을 두고 번역하지 아니하였을까 그리고 구원이 공동체에게 역사하는것이 아니라 개인의 믿음으로 고백하는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한국 개신교에서는 <개인의 구원을 더 중요하게 강조할 필요가 있기 때문>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3:16)"
바르실래
잔치에 참석하지 아니한 사람
(바르실래)
1.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서 요단강 건너 5Km쯤에 있는 마하나님에 머물때입니다. 다윗은 잠시후면 압살롬과 큰 전쟁을 치뤄야합니다. 이번 전쟁은 압살롬이 유리한 전쟁이였습니다. 다윗과 함께한 숫자는 압살롬과 함께한 숫자보다 적었습니다. 이때 다윗에게 나아와서 다윗에게 먹을것과 마실것을 제공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이름이 <바르실래>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약에 압살롬이 전쟁에서 승리를 하면 다윗에게 도움을 제공한 사람들은 죽은 목숨이될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와줍니다. 만약에 이들이 없었다면 다윗은 압살롬과의 전쟁에서 패전했을수도 있습니다.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에 암몬 족속에게 속한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에게 먹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 (삼하17:27-29)"
2. 다윗의 군대는 압살롬과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둡니다. 이제 다윗은 다시 요단강을 건너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려고 합니다. 바르실래는 왕이 무사히 요단강을 건너도록 끝까지 도와줍니다. 다윗은 그때 <바르실래>에게 말을 합니다. 같이 예루살렘으로 가면 내가 너의 여생을 책임지겠다고 말합니다. 바르실래는 다섯가지 이유로 거절을 합니다. 그리고 바르실래는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는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지만 칭찬의 자리를 거부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나의 생명의 날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2). 나이가 많아서 분간을 할수없습니다.
3). 왕께 누를 끼칠수 없습니다.
4).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입니다.
5). 상이 너무 큽니다.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1)*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2)*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3)*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당신의 종은 왕을 모시고 4)*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거늘 왕께서 어찌하여 5)*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삼하19:33-36)"
3. 당연히 누릴수 있는것인데도 불구하고 그 상받는 자리를 거부했던 바르실래를 보면서 지금 현재의 우리의 모습과 비교하면 어떠한가요? 우리는 우리의 노력에 비하여 나의 공로에 대하여 인정함이 너무 작다고 화를 내거나 지체와 다툼을 할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당연시하게 누리는 것들은 사실 어디에서 온것일까요?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가 누리는것들 일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당연한것들이 당연한것들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의 은혜가 날마다 나에게 있다면 우리는 다른 상급이 별로 필요 없을수도 있습니다. 그 십자가의 은혜가 나를 어떤 자리로 이끌고 있나요? 십자가의 은혜는 우리를 상을 받는자리보다는 고난의 자리로... 정죄의 자리가 아닌 생명을 살리는 자리로 우리를 이끈다고 생각이듭니다. 나는 지금 어떤 자리로 가고 있나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8:4)"
*생각해볼점:
1. 우리가 당연히 누려야하는것을 누리지 않음으로 지체를 높여줄수 있는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누리는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6-8)"
(바르실래)
1.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서 요단강 건너 5Km쯤에 있는 마하나님에 머물때입니다. 다윗은 잠시후면 압살롬과 큰 전쟁을 치뤄야합니다. 이번 전쟁은 압살롬이 유리한 전쟁이였습니다. 다윗과 함께한 숫자는 압살롬과 함께한 숫자보다 적었습니다. 이때 다윗에게 나아와서 다윗에게 먹을것과 마실것을 제공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이름이 <바르실래>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약에 압살롬이 전쟁에서 승리를 하면 다윗에게 도움을 제공한 사람들은 죽은 목숨이될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와줍니다. 만약에 이들이 없었다면 다윗은 압살롬과의 전쟁에서 패전했을수도 있습니다.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에 암몬 족속에게 속한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에게 먹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 (삼하17:27-29)"
2. 다윗의 군대는 압살롬과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둡니다. 이제 다윗은 다시 요단강을 건너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려고 합니다. 바르실래는 왕이 무사히 요단강을 건너도록 끝까지 도와줍니다. 다윗은 그때 <바르실래>에게 말을 합니다. 같이 예루살렘으로 가면 내가 너의 여생을 책임지겠다고 말합니다. 바르실래는 다섯가지 이유로 거절을 합니다. 그리고 바르실래는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는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지만 칭찬의 자리를 거부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나의 생명의 날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2). 나이가 많아서 분간을 할수없습니다.
3). 왕께 누를 끼칠수 없습니다.
4).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입니다.
5). 상이 너무 큽니다.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1)*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2)*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3)*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당신의 종은 왕을 모시고 4)*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거늘 왕께서 어찌하여 5)*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삼하19:33-36)"
3. 당연히 누릴수 있는것인데도 불구하고 그 상받는 자리를 거부했던 바르실래를 보면서 지금 현재의 우리의 모습과 비교하면 어떠한가요? 우리는 우리의 노력에 비하여 나의 공로에 대하여 인정함이 너무 작다고 화를 내거나 지체와 다툼을 할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당연시하게 누리는 것들은 사실 어디에서 온것일까요?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가 누리는것들 일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당연한것들이 당연한것들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의 은혜가 날마다 나에게 있다면 우리는 다른 상급이 별로 필요 없을수도 있습니다. 그 십자가의 은혜가 나를 어떤 자리로 이끌고 있나요? 십자가의 은혜는 우리를 상을 받는자리보다는 고난의 자리로... 정죄의 자리가 아닌 생명을 살리는 자리로 우리를 이끈다고 생각이듭니다. 나는 지금 어떤 자리로 가고 있나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8:4)"
*생각해볼점:
1. 우리가 당연히 누려야하는것을 누리지 않음으로 지체를 높여줄수 있는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누리는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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